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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詩] 옛날 그 집세계문인협회칠곡지부장 여환숙 시인

기사입력 2016.11.0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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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그 집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11월 첫 날, 불쑥 박경리 선생님의 가을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자연은 과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내 영혼을 실하게 채워주었고’ ‘내 뜰은 생명으로 충만하다’고 하시며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하셨네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 벌써부터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묵은 것은 깨끗이 버려 새 마음으로 새 봄을 맞이해야 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여환숙(시인, 세계문인협회칠곡지부장) 

    -전 칠곡군청(구상문학관) 근무

    -2008년 4월<월간 문학세계․시 세계>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10년 제10회 동서커피(맥심)문학상 수상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칠곡문화원 이사

    -향토경북 칠곡군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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