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royalblue face=굴림 size=3>대각국사비가 금오산 선봉사에 왜 새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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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대각국사비가 금오산 선봉사에 왜 새워졌을까

신라통일 불교 화엄종 중흥조인 의상대사가 낙산사 홍연암에 토굴정진, 고려의 민중불교 천태종 종조인 대각국사 의천은 남숭산 선봉사 토굴에서, 청산은 나를 두고 말없이 살라하며 천하를 노래한 나옹선사는 봉미산 신륵사 토굴에서 득도한 깨달음 선시 화두들이 불경처럼 회자되어 뭇 중생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후삼국 통일 팔공산 전투에서 견훤에 참패한 왕건은 대목(大木)중심 군미국이 신라에 합병되었지만 호족세력으로 살아남아 왕건을 구사일생 살려준 은혜로움에 족장의 딸 왕비 간택 과함께 고려창업 왕건의 호 약천(若天) 첫 자를 때어 약목(若木) 지명으로 귀하게 하사받아 천년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금오산 정상 현월암 동편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5~6m 마애불입상(보물440호)과 함께 봉황이 춤을 춘 명당길지 선봉사가 임진왜란에 소실되었지만 만여평 명산대찰이 대각국사비(보물251호)와 함께하였고 인동을 합병한 약목청 백성들은 적선불사를 일으켜 국태민안 염원을 함께 하고자 정도사 아름다운 탑 도리 5층 석탑(보물357호)을 새웠다.

 

탑신에서 나온 정도사 사지에는 고려 초기 사회상과 생활규범을 알아보는 중요민속 자료와 함께 신라의 귀중한 이두 문자로 발견되었지만 일본 총독부가 조선의 전통적 숭배사상인 풍수지리 명당에 위치한 정도사를 경부철도 설치를 이유로 흔적 없이 철패 시켜 5층 석탑과 그 유물들이 박물관에 안타깝게 방치되어있다.

 

단군신화 삼족오(三足烏) 태양신을 숭배하며 옛 고구려의 전통성을 계승한 고려국 불교는 송도중심 북쪽 묘향산을 북숭산(北崇山)으로 점지하고 남쪽의 금오산(金烏山)을 남숭산(南崇山)으로 숭상하며 왕사인 대각국사가 금오신화의 명당 선봉사에 주석하면서 몽고군에 소실된 동명 송림사와 함께 많은 사찰을 중창불사하고 왕실 궁중불교에서 불국토 백성중심 민중불교 천태종 선풍을 일으킨 위대한 선각자였다.

 

이수헌 전 민주평통칠곡군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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