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기고] 칠곡의 자랑 불천위 장현광(여헌)

기사입력 2016.10.31 22:11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조선유학의 양대 산맥으로 퇴계학맥(남인) 주리(主理)론과 기호학파(서인) 율곡 주기(主氣)론의 학문적 순수한 논의가 치열한 사상적 정치논쟁으로 비화되면서 망국적 당파싸움을 걱정한 여헌은 퇴계와 율곡의 두 학문을 베를 짜는 씨줄(理) 날줄(氣)에 비교, 도(道) 일원론 통합을 주장한 칠곡의 큰 인물이었다.

     

    공자문하 많은 제자들 중 학문을 즐기는 1인자를 안자라고 한다면 성리학의 중추적 영남학맥에서 호학의 으뜸으로 장여헌이 있다고 퇴계 학맥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한강이 예찬했으며 한강은 여헌의 처 삼촌이기도하다.

     

     

    명분론 조선 유학에서 실학의 범주인 주역에 심취 1571년 우주(宇周)설을 주장 즉, 지구가 추락하지 않는 것은 우주가 서로 당기면서 돌기 때문이라는 획기적 발상은 1633년 종교제판에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포기하고 사형을 면한 갈릴레오의 중세 유럽보다 앞서가는 선진문화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모님 신주를 등에 업고 금오산성과 성주 독용산성을 헤매다 또다시 부끄러운 병자호란 국상을 만나 임금이 청나라 왕에게 무릎 꿇고 치욕적 항복에 신하로서 불충의 책임과 회한을 안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심산유곡 포항 입암(立巖)에서 세상을 절연하고 오직 주역 학문만을 즐겼다.

     

     

    흥망의 난세에 천세마다 미래불 미륵 같은 구세주를 간절히 바랬지만 국난 중 인조 임금은 장현광의 아쉬운 죽음에 직접 제문을 내리면서 여헌의 태어남을 500세만의 귀함이라 칭송하고 영의정 추서는 물론 문강공 시호와 함께 인동 동락서원에는 칠곡 고을 최초의 존경을 상징하는 국반 불천위로 추대 모서져있다.

     

    남숭산(南崇山)의 존칭 금오산(金烏山) 금 까마귀 명당인 오태(烏台)의 탯줄 따라 낙동강 수기가 차오르는 흥의 길지에는 영남명문가인 오태동 장택상(창랑) 생가이며 그 금오기맥(金烏氣脈) 뒷산 따라 조선유학의 태두 길제(야은)와 장여헌의 무덤이 낙동강을 안고 돌며 미래의 영광 금오신화를 노래하고 있다.

     

    2016년 10월 30일 매원 곡촌 이수헌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