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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원정(문익공) 불천위

기사입력 2016.09.2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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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익공 이원정은 정구(한강)의 세손 제자로 조선 중후기 퇴계학맥 영남 남인으로 벼슬이 정이품 이조판서에 이르면서 직계적손 4대 한림의 명문가이며 남인의 영수였다.

     

    동방공자 퇴계의 법제자 정한강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성주 회연서원에서 학문을 가르치다 칠곡군 낙동강 노곡동(현 왜관읍 낙산동)에 정착 노회함에도 경산지 집필에 전념하다 화재를 만나 자료가 소실되자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탄식했다.

     

    칠곡(현 대구) 사수동으로 낙향한 정한강은 제자 이윤우(석담)를 불러 향토실학 경산지 창간을 간곡히 당부함에 석담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아들 이도장(낙촌)에 이어 손자 이원정(문익공)으로 3대에 걸쳐 경산지 집대성의 큰 위업을 이루었다.

     

    문익공은 사색당쟁 예송논쟁과 역모에 휘말려 곤장장살 참혹한 죽음을 당했으며 아들 경상감사 이담명(정재공)은 아버지의 피 묻은 장삼을 10년이나 입고 다니면서 억울한 가슴의 한을 상소하자 숙종 임금이 감복, 신원과 명예가 복원되고 왕으로부터 문익공 시호를 하사받으면서 영의정에 귀한 국반 불천위로 추증되었다.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돌밭)에 고색창연 우람한 종택 뒤뜰에는 농암정사(聾岩精舍)가단아한 군자의 모습이며, 문익공 8대손 이상석(농암)은 일제식민 지배당시 창씨개명 친일활동 유화정책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귀머거리 농아를 자청 세상과 절연한 삶을 살았다.

     

    농암정사에서 국보급 용비어천가와 인조임금 친필병풍 등, 장서와 귀중품이 많이 나왔으며, 도난 보관관리상 어려움으로 국립역사박물관과 가톨릭 효성대학에 분산관리하고 있으며 정사 옆 대밭을 비켜서면 선비의 상징 향나무와 벼슬의 상징 회나무가 수문장처럼 문익공 불천위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수 백 년 묵묵히 지키고 있다.

     

    #경산지(京山誌): 실학이며 사학인 경산지는 향토 성주 칠곡의 인물 역사 풍수지리 민속 예 법등을 정리한 일반 사대부와 만백성을 위한 생활철학 지침서.

     

    #불천위(不薦位):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의 상징, 관혼상제는 예(禮)의 으뜸으로 4대 봉제사(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가 전통예법 이지만 문중에서 나라를 위해 훌륭한 조상님의 공덕을 찬양하고자 임금이 어명으로 대대손손 영원히 제사지내라 함은 국반불천위 제사라 하며 향토 유림에서 천거한 제사는 향반 불천위라고 했다.

     

    2016년 9월 향토사학 매원 곡촌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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