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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녹봉정사 복원사업은 시대적 사명

기사입력 2016.03.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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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실학을 250년 앞당긴 ‘한려학맥’ 재조명 강학의 명소

     

    녹봉정사는 450여년전 강학당인 성정당 시습제 양호루 등 격식을 두루 갖춘 교육시설과 관물대 천년지와 함께 팔공기맥(八公岐脈) 끝자락 금낙정 풍광과 함께 운치를 자랑한 유서 깊은 서원이었으나 산불로 소실되면서 다시 복원하고자 2011년 경상북도 문화재(585호)로 지정됐다.

     

    창건당시 조선 유림을 대표한 퇴계 선생의 현판 친필이며 녹봉정사는 한강 석담 여헌이라는 영남의 훌륭한 문인을 배출하고 특히 한강은 제자 영의정 허미수로 하여금 문경새재를 넘어 경기지방까지 영남학맥을 전수해 실학인 성호사설 이익과 함께 목민심서의 정약용과 같은 훌륭한 실학의 맥을 이었다.

     

    녹봉정사 건립과 함께 퇴계의 수제자 금계 황준량과 남명의 수제자 덕계 오건이 성균관 책임교수로 녹봉정사 강의를 통해 위대한 한강을 탄생시켰으며 특히 금계선생은 성주목사로 부임해 녹봉과 사제를 털어 정사건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녹봉정사의 걸출한 한강은 만백성을 위한 실사구시(實事求是)실학의 시조(始祖)로 낙동강 중류(中流) 한려학맥을 재평가해야하며 이제까지는 강 상류(上流) 경상좌도의 예(禮)를 중시한 퇴계 학맥과 강 하류(下流) 경상우도엔 의(義)를 강조한 남명학맥이 조선유림을 대표한 영남 유림의 쌍벽이었다.

     

    퇴계는 처(處)중심 예를 주장 학자를 많이 배출하고 남명은 의를 강조했기에 우국지사 의병장이 많이 탄생됐다. 그 제자 금계와 덕계에 의해 예와 의를 아우른 녹봉정사 한강(寒岡)정구(鄭逑1543-1620);선생의 출현으로 향토의 인물 역사 지리 풍속을 종합 기록한 창산지(昌山誌)와 오선생 예서(禮書) 의서(醫書) 등 만백성이 필요한 종합 실학서적을 많이 출간하게 됐다.

     

    한강선생은 실학 향토사학의 대작 경산지(京山誌)를 집필하면서 화재를 만나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탄식하고 제자 석담을 불러 경산지 집필을 간곡히 부탁하고 금호강 사수동에 은거했다. 이로써 경세적 실학인 경산지는 석담의 아들 낙촌에서 영의정 추서를 받은 손자인 이원정(문익공) 3대에 걸쳐 완성됐다.

     

    이제까지는 조선실학을 정약용(다산)으로 시작한다는 실학의 발상지를 정한강 녹봉정사 중심으로 250년 앞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근거는 남인으로 귀하게 영의정에 오른 최제공이 스승인 실학자 이익의 비문을 쓰면서 동방유학은 영남 퇴계에서 출발, 정한강에 법통전수하고 경기지방 허미수를 통해 성호 이익에서 정다산으로 이어졌다는 비문기록을 참고해야 하기에 녹봉정사를 사랑하는 영모회원님들께서는 정사건립의 깊은 뜻을 모아 참 주인정신 한 마음으로 건립기금(2억5천만원) 목표기간 2016년 6월30일까지 적극동참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녹봉정사 건립 추진위원장 이수헌(향토사학 곡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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