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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녹봉정사(鹿峰精舍) 복원을 위한 희소식

기사입력 2015.11.0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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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원 곡촌 이수헌

    지천면 창평리 녹봉정사 문화제 지정과 함께 복원 연구보고서가 행정당국에 채택 된지 3년이 지났지만 소실된 녹봉정사 폐사지에 스님이 임시 거처하면서 복원사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절 이전 문제는 국고지원이 안되기에 농봉정사 영모회에서 자체해결 해야 함은 운영기금도 고갈된 영모회 측으론 참으로 대책 없는 허송세월 안타까운 나날이었다.

     

    다행히 칠곡 광주(廣州)이씨 진경(進慶) 문중에서 우선 종중재산을 담보대출 받아 1억원을 절 이전비용으로 희사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자체이자 부담으로(년 5%)년간 500만원 협찬모금하고 모자람은 전액 종중기금으로 매년 백대지친(百代之親)적선(積善)하면서 원금상환은 20년 장기계획에 의한 화패가치 평가절하효과로 부채상환 부담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영남유림 경상 좌·우도를 경계 낙동강 상·하류에 예(禮)를 실천한 퇴계 학맥과 의(義)를 주장한 남명 학맥의 동질성을 공유하고자 성주목사로 부임한 퇴계의 수제자 금계와 남명의 수제자 덕계는 국립성균관 파견교수로 녹봉정사에서 예의(禮義)실천적 강학을 펴면서 현철(賢哲)한 정 한강(1513)의 시대적 출현으로 낙동강중류에 강안(江岸)학맥 실천실학이 태두 되었다.

     

    한강은 석담과 여헌 등 많은 문인을 배출하면서 특히 한양 근기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지 않고 유림천거로 영의정까지 오른 남인의 거두 허목(미수)은 정한강의 제자가 되어 한강학맥을 문경새재를 넘어 근기지방까지 학문의 영역을 넓히고 실학의 대가 정다산(1762)과 같은 위대한분을 탄생시켰다.

     

    녹봉정사 오건(덕계)의 책임강학 기록문집과 함께 성주목사로 부임한 황준량(금계)은 녹봉과 사재를 녹봉정사 건립에 헌사 주도하고 또한 칠곡 유림중심으로 성주 선산 타 고을 문중에서도 기금협찬으로 유서 깊은 녹봉정사를 창건하고 퇴계가 직접 현판을 했었다.

     

    소실된 칠곡의 자존 녹봉정사의 문화제적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다산 이전 실학(實學)을 한강 기준으로 249년 앞당겨야할 당위성 필연이기에 칠곡광이가 쾌척한 성금의 좋은 인연을 시작으로 이전 목표기금을 조속히 조성하여 녹봉정사를 재 복원해야함은 우리들의 시대적 사명이라 하겠다.

     

    매원 곡촌(향토사학)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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