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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복(伏)날 백년가약(百年佳約)

기사입력 2015.09.1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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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恨) 오백년 세월 따라 나라를 빼앗긴 일본총독정치의 혹독한 고초와 함께 해방은 되었지만 가난의 멍에는 초근목피(草根木皮) 먹거리용으로 붉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독성을 우려내고자 개천에 핏빛 도랑물이 마을마다 넘쳐나고 감꽃이 떨어지는 춘궁기의 절정에 보릿고개 봄날, 원수 같은 한이 계속되었다.

     

    특히 경상도 내륙은 바다를 멀리하여 생선 해조류가 귀한 곳이라 서민들 허기진 삼복더위에는 가뭄에 콩 나듯 단백질 보충은 오직 개와 닭에 의한 한 보신탕(補身湯)으로, 고유한 된장 김치와 함께 민족 식품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죽하면 “복날 개 패듯” 한다는 웃지 못 할 우리민족만의 속담이 전래했을까?

     

    70년대 초창기 농협창설과 함께 연말, 결산적자를 면하지 못하여 월급받기가 민망했으며 보너스는 감히 생각도 못했지만 70년대 후반은 농민 조합원을 위한 사업의 다양성과 참여정신의 확대로 흑자결산을 이루어 성과급 보너스와 함께 만백성이 어려웠지만 귀한 여름피서 휴가비도 지급되었다.

     

    그 시절 2만원 휴가비면 개 한 마리 값이며 매년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 마을 어른들은 시냇가 버드나무 그늘에서 개를 잡아 보신탕 큰 솥 걸어놓고 온 동네가 복더위에 이열치열(以熱治熱) 잔치판을 벌리며 모두가 해마다 기다려지는 추억어린 복날의 연례행사는 40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지난해 여름휴가 복날을 보내면서 동네 어른들의 말씀인즉, “이젠 이조합장이 농협을 그만두면 복날 보신탕 대접을 누구한테 받을까”하면서 아쉬운 걱정의 말씀들이였다. 단호하게 말씀드리지만 이제까지는 마을에서 농협직원이 저 혼자였지만 이젠 5명이나 되기에 후배들에 의해 어른들에게 미풍양속인 복날 보신탕의 날이 계속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올해 명예로운 퇴직을 하고 첫 복을 맞이하면서 마을 어른들에게 후배직원들과 함께 상견례 인사를 드리고 앞으로 40년 그 후 60년 세월을 이어가면서 복날 전통 민족음식인 보신탕 대접을 한다는 백년가약(百年佳約)다짐과 함께 만장일치 박수로 복날 즐거운 한 마당 여흥의 자리가 되었다.

     

    매원 곡촌(향토사학)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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