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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고산 계곡, 미군의 숭고한 죽음

기사입력 2015.08.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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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비극 6.25” 참혹한 전쟁으로 3일 만에 수도서울이 함락되고 지상군의 왕자인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은 30여일 만에 금수강산을 초토화시키면서 공산인민 해방구로 붉게 물들고 대구와 부산 사수라는 워커라인은 왜관기준 포항 마산을 연결한 낙동강 중심 마지노선은 민족의 운명을 가르는 절대 절명 이었다.

     

    김일성은 적화통일 경축식(8월15일)을 부산에서 호언장담했다. 경부선 따라 주력부대인 인민군 저지를 위해 왜관 낙동강 다리를 다급하게 폭파 했지만 적은 전략적 중요한 자고산(303고지)점령을 위해 야간에 강을 건너 국군으로 위장 46명 미군이 생포당하고 요충지 정상을 뺏겨버렸다.

     

    주 전선 낙동강 다리의 폭파를 기점으로 적은 상 하류에 양면 도강작전을 위하여 북삼오평 마진(말구리) 나루터에서 석적 포남(浦南)나루터를 건너 328고지를 인민군에게 점령(8월13일)당하고 15번 이상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와 함께 성주 선남(船南)나루터를 건너 왜관 낙산초등학교 옆 배터(뱃태)마을을 따라 금무산 268고지가 돌파(8월9일) 되고 다부동 전선이 밀리면서 대구시내에 포가 떨어지는 등 시민의 동요와 위기가 극에 달하였다.

     

    트루만 미 대통령은 핵무기를 탑재 할 수 있는 공포의 전략폭격기 B-29 98대를 적 주력부대가 포진한 약목주변에 융단폭격(8월16일)으로 천지개벽 불바다로 적의 기를 단번에 꺾어버렸다.

     

    당시 미국 여론은 한반도 작은 코리아를 위해 젊은 미군의 많은 희생은 물론 268고지 전투에서 초유의 미군 부사단장과 참모장이 사상되면서 미국이라는 자존의 상처와 함께 사기가 곤두박질 쳤다. 전쟁비용 또한 천문학적 투입으로 명분과 승산에 관계없이 한국을 포기하라는 거센 반전 여론은 대구가 함락되면 부산을 포기하고 바로 미군의 일본 철수계획은 물론 또 다시 타의에 의한 해외 망명 임시정부를 미국은 구상했다고 한다.

     

    “자고산(303고지)계곡”에서 40명 미군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참혹한 시체 더미에서 구사일생 살아난 6명의 병사에 의해 폭로되면서 미대통령의 대노와 함께 확전여론으로 미국은 갑자기 돌변해 버렸다. 한편 한미 연합군은 공포의 융단폭격 사기충천으로 삼총사(303,323,268)고지 중심 다부동 전선을 30여 일간 버티면서 주력 미 7함대가 태평양을 건너 인천상륙(9월15일)을 위한 지연작전의 성공은 오직 자고산 계곡 미군의 숭고한 죽음에 의한 확전여론으로 위대한 자유민주주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칠곡평통과 칠곡군 공동주관으로 주한 미군과 함께 합동추모 위령제를 지내면서 아쉬움은 저수지 둑 위 가신님들의 숭고한 기념비적 죽음이 비바람 가림 막도 없이 노천에서 초라하고 외로운 추모비의 모습이었다. 개천가에 부모 무덤 개구리 울음 우화의 걱정같이 우리 모두가 안타까운 아쉬움이라 하겠다.

     

    칠곡군은 자고산 계곡 미군의 숭고한 죽음을 재평가하여 성역화 계획을 추진한다니 시대적 필연이라 하겠다. 추모제 음복을 나누면서 우리 칠곡평통 에서도 주체적 동참의 뜻을 같이하고 미군 측에서도 기꺼이 성역화에 참여하겠다는 열의는 무더운 날 이었지만 뜻 깊은 추모 위령제의 하루였다.

     

    2015년 8월 민주평통 칠곡군협의회 회장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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