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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숭산동 숭오동과 삼족오남숭산

기사입력 2015.07.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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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신화 삼족오 태양신의 상징 금오산이 불국토 남숭산으로 낙동강 양안(兩岸)약목 수동(인동)과 함께 백포산성 천생산성을 경계하여 인구가 동경(고려시대 경주)과 같았다고 하며 전통적 지방호족 제후들의 지역관리와 함께 약목은 왕권의 배려로 큰 규모의 행정 관리청(廳) 또한 있었다.

     

    불국토를 염원한 금오동천 대각국사비문에 의하면 남숭산 삼대사찰(선봉사, 월남사 숭산사)을 중심으로 많은 암자와 말사를 거느리며 불교문화의 성역화를 완성했다. 특히 약목의 정도사와 오층석탑은 지방호족과 순수민초들이 불사를 일으키며 귀한 사리를 봉안한 탑을 조성하면서 당시의 사회적 시대적 환경을 기록한 훈민정음이전 이두문자이며 우리나라 실존의 최고문서로 정도사 오층석탑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 대목(大木)중심 지방호족들의 고려건국을 위한 결정적 은혜의 보답으로 약목애칭 인연의 정신문화적 상징인 정도사 오층석탑이 일제식민지 지배의 정당화 와함께 문화 말살정책으로 서울박물관으로 이송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대구 국립박물관으로 이전의 수난을 당하고 있으며 이제는 13만군민의 자존으로 칠곡에 되찾아 와야 하겠다.

     

    특히 약목면사무소 뒷산인 시묘산에는 수많은 고분군이 산재하고 있으며 퇴락과 방치의 오랜 세월에 대부분 도굴되고 거대한 무덤으로 통하는 석실입구만 입을 벌리는 듯 망연자실 하소연은 그저 민망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나마 도굴된 일부의 유품은 회수하여 경북대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니 다행이며 정도사 오층석탑과 함께 칠곡 이전을 같이 검토해야겠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기를 든 고려 말 약목의 부원군 류번(柳藩)과 호족세력들은 역적으로 폐족에 몰리면서 철저히 파괴되고 인동부(仁同府)로 청사를 빼앗기며 500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대각국사비의 원력으로 선봉사와 월남사는 절이라는 남루한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숭오동(崇烏洞) 마을어른들(유영록 신익식)에 의하면 남숭산 계곡야지에 기왓장 도자기의 많은 흔적들이 매몰 산재되어있지만 산을 숭배했다는 숭산사(崇山寺)는 유구한 세월에 묻혀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각국사비의 국보 문화제와 월남사 석축이 지방문화제로 지정되면 길이 열리며 5백세 천세마다 흥망의 미래불 미륵신앙을 염원하는 선각자와 많은 불교신자에 의해 중창불사의 꿈이 충만하다는 두 주지스님의 이구동성에 귀 기우려 보아야 하겠다.

     

    칠곡은 문화의 보고이다. 고조선 군미국 인연의 약목(若木)중심 불교문화, 영남삼촌 매원(梅院)중심 유교문화, 한티 신나뭇골 성지와 함께 대 수도원에 의한 기독교 문화, 민족의 비극 6,25동란 낙동강 전투에서 마지막 보루를 지킨 호국문화와 함께, 체계화된 합리적 문화의 종합 박물관 전당이 칠곡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반드시 필요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라 하겠다.

     

    2015년 7월 30일 향토사학 매원 곡촌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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