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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명당과 자고산의 만남

기사입력 2015.05.1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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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산 흥국사를 향하는 입구에 조선중기 문과에 장원급제한 벽진 인 이언영(완석)공이 조정에서 은퇴 후 학문을 즐기던 낙연(洛淵)서당이 우뚝한 군자의 옛 선비처럼 반가운 모습이다. 흥국사 약수터를 따라 자고산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산마루 쉼터에 이르며 정상을 향하는 능선에 토성(土城)을 쌓은 듯 담장처럼 인위적 흙 돋음 흔적이 엿보인다.

     

    돌밭(석전3리) 중심 이조중엽 남인의 영수로 영의정 문익공 으로 추증된 광주 인 이원정공의 고택은 불천위를 모시는 사당과 함께 서가고택 등 3대(낙촌(齊) 문익공 정재공)가 현달한 조상을 숭배하고 또한 학문의 전당은 물론 일가는 백대지친(百代之親)하라는 깊은 뜻을 간직한 동산제(東山齊)를 곁들이면서 품격을 두루 갖춘 명당자리가 돋보인다.

     

    돌밭고택, 낙동강 돛단배의 깃발이 보이는 듯 물길 따라 경상좌우도의 대표적 유림과 학문적 인적 교류는 물론 문경세제를 넘어 과거에 급제하지 않고 유일하게 당상관 영의정에 오른 충청도의 사림토후(士林土侯) 허목(미수)을 통해 기호지방에 까지 영남학맥과 남인정치를 같이하고 조정의 배려로 왜인(倭人)이 왜관(倭館)에 상주하면서 문물의 역동적 낙동강 돌밭나루터가 성리예학인 머물음의 처(處)보다 실학의 출(出)을 강조하며 부귀(富貴)의 겹 명당을 더하였다.

     

    상고시대부터 주역의 지혜로움이 발전한 풍수지리학 명당은 민중의 우상이며 민족의 뿌리 깊은 전통사상을 간파한 일본은 쉽게 식민 지배를 위해 임금이 거주하는 조선 제일명당 경복궁 왕기(王氣)를 꺾기위해 광화문 왕궁 앞에 총독부를 세워 나라의 기 눌림 억압을 하고도 모자라 전국 명산대찰에 혈맥을 자르고 쇠말뚝을 박아 조선의 민족혼을 말살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문익공 종택 앞마당에서 보면 가까이한 자고산 자락이 뒤 담장 울타리로 보이며 저 멀리 금오산이 몰래 담을 넘어오듯 도둑의 모습이다. 액운을 막고 방패 하고자 울타리 얕은 자고산 능선에 토성을 담장처럼 쌓아 도둑의 형상인 금오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관터 돌밭 명당을 비보(裨補)했다고 한다.

     

    2015년 5월 10일 이수헌(곡촌) 전 왜관농협조합장(향토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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