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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팔공산의 역사적 의미

기사입력 2014.06.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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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북두의 태백산을 시작으로, 동서남북에, 위치한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과 함께 공산(公山)은 반도의 중심인 중악(中岳)으로 오악산(五岳山)중에 으뜸이었다. 또한 공산은 주인 없는 산이면서 만인이 다 같이 공유한다는 유불선(儒彿仙)을 같이한 무주공산(無主空山)의 동일적 개념이며 조선 개국과 함께 산 주위에 8개현이 형성되면서 팔공산으로 이름 하였다는 설이 강하다.

     

    상고시대부터 삼신산, 산신각(山神閣)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산을 숭배한 사상이 발전하여 무속신앙의 뿌리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후 신흥 불교가 전래 되면서도 부처가 정좌한 대웅전 뒤에 산신각을 안치하고 우리고유의 민속신앙과 타협하면서 공존을 같이하고 있다.

     

    태산북두인(泰山北斗) 태백산 천제단(天祭壇)을 시작으로 서쪽 계룡산(鷄龍山)의 천황봉(天皇峯)과 남쪽 지리산의 천왕봉(天王峰)은 오악산이면서 삼신산이다. 공산은 오악산과 함께 화엄종찰의 산이기도 하기에 최고봉을 화엄사상을 상징하는 비로봉(비로자나불)이라고 했다.

     

    삼국유사에서 공산의 미리사(美里寺)는 화엄 5대사찰로 제일봉은 빛과 밝음을 상징하면서 부처가 현신한 비로봉(毘盧峰)이며 동봉은 아미타봉이다. 산성봉(山城峰) 능선과 함께 팔공산 8경중에 으뜸인 바위암 절벽의 병풍능선에는 크고 작은 마애불상을 조각하고 명산대찰인 동화사와 은해사가 구산선문(九山禪門)을 대표하면서 귀하게 2개의 교구본사가 있기도 하다.

     

    비로봉 동남쪽에 정좌한 소원성취의 상징인 갓 바위 부처와, 최초의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안택의 길지에 부인사가 있다, 삼국통일의 염원을 기념한 석굴의 모태인 군위의 삼존불 석굴암부처와 함께 일연스님이 국보적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麟角寺)에서 바라본 비로봉은 안산과 조산으로 천년지기 동행을 같이하고 있다.

     

    비로봉과 아미타봉이 겹 배산으로 둘러 쌓인 파계사는 성철스님이 8년간 장좌불와의 고행으로 깨달음을 이룩한 성전암(聖殿庵)은 선(禪)불교 3대 도량이며 관세음보살이 현신한 신라의 고찰 진불암(眞佛庵)중심으로 팔공산 계곡과 산자락마다 팔만 구암자의 수많은 불국토의 문화유산들은 몽고군의 침입과 임진왜란으로 많이 회손 되었지만 경주 남산과 함께 민족문화의 산실이라 하겠다.

     

    삼존불 석굴암의 부계와 군위영역은 팔공 지맥의 북쪽관문 화산과 함께 공산성 중심으로 고구려 백제와의 치열한 전투장에서 신라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길목이었다. 그 후 고려의 왕건과 견훤은 치열한 공산 전투에서, 충성을 다하여 목숨 바친 신숭겸 장군의 숭고한 유적과 함께, 그 당시 전투현장의 많은 지명유래가 팔공산 자락마다 지금도 애환을 간직 한 채 살아 숨 쉬고 있다.

     

    삼국통일의 치열한 내전과 함께 몽고와 왜구의 침입으로 요충인 중악에 공산산성을 쌓았으며, 조선은 임진왜란을 혹독하게 겪으면서 팔공산 서북(西北) 끝자락에 각각 가산산성과 화산산성을 신축 하였다. 팔공산의 상징인 공산성은 오랜 군부대의 주둔으로 성은 아쉽게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흔적들을 찾아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다시 복원을 해야 하겠다.

     

    근세조선은 종묘사직(宗廟社稷)을 통치이념으로 하면서 조상신을 모시는 종묘와 신농(神農)의 사직단에 왕이 제를 올리고 천재지변으로 민심이 흉흉하면 전국의 수령방백들을 통하여 산하(山河)의 명산에서 하늘에 제를 올렸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한 조선 왕조는 승려를 노비 천민으로 전락시키고 불국토의 유명한 사찰들은 유교경전의 전당인 서원으로 탈취하고 풍광 좋은 암자는 정자로 바꾸어 선비들의 시류와 풍류를 즐기는 놀이마당 문화로 탈바꿈 당했다.

     

    지방화 시대에서 갓 바위 부처와 팔공산 관활권 분쟁과 함께 비로봉을 천왕봉으로 하고 상고시대부터 최고의 수문장인 산성봉(山城峰)을 비로봉으로 변경하자는 영천시의 사실적 근거의 대부분은 조선 선비들의 문집과 산행의 시문을 참고하고 일부 지방신문의 픽션화된 칼럼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또한 영천시민의 여론조사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인근 군위군의 지명변경 여론조사는 옛 지명인 비로봉과 산성봉을 그대로 두고 보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불국토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군위군민의 개관적 판단이 돋보인다. 문화의 깊이와 가치는 단절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간직함이 문화재관리의 기본이고 아울러 우리 모두의 지킴이적 책무 이기도하다.

     

    지방자치의 경쟁적 다툼의 소유개념 보다 주인 없는 주인의 공산을 국립공원화로 격상시키면서 불국토인 공산산하를 유네스코적 높은 가치 창출을 위한 지혜를 모아 만인이 다함께 공유한다는 우리 모두의 세계적 팔공산으로 복원해야겠다.

     

    칠곡군 지명위원 왜관농업협동조합 조합장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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