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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낙동강(다부동)전투와 삼총사

기사입력 2014.06.0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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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투사에 빛나는 백마고지 전투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치열한 전투로 유명한 328(숫대미산)고지는 한국 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버팀목으로 지켰으며, 미군이 주둔한 303작오산 고지와 인근268금무산과 함께 삼총사고지는 천년 요새인 낙동강을 방어벽으로 마지막 대구 부산을 사수한다는 유명한 워크라인의 마지노선인 최후 요충지였다.

     

    인민군은 8.15광복절에 부산을 함락하여 남한을 해방시킨다는 전략으로 중요한 삼총사 고지를 행하여 삼각 편대대를 형성하고 동시 다발적으로 야음을 틈타 강을 건너 여러 곳에 집중 공격을 가해왔다.

     

    북삼 오평리의 마진(馬津), 일명 말구리 선착장을 중심으로 석적 포남리(浦南)나루터로 건너와 망정리 남티 고객를 넘어오는 지방도와 함께 왜관을 출발 망정초등학교와 만나는 국도와 겹쳐 망루와 같은 328고지는 방어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다.

     

    또한, 328고지는 다부동을 넘어가는 듬티 고개와 황학동 요술고개로 연결된 Y자형 협곡의 요충이기에 주인이 12번이나 바뀌는 등 고지쟁탈을 위한 육박전과 함께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 하였고, 병력 보충의 시급함에 징집영장도 없이 부대 인사장교가 피난의 도시 대구에서 강제 징용하여 전투에 투입하는 등 기구한 사연도 많았다.

     

    268공지를 향하는 인민군은 성주 선남(船南)나루터에서 밤중에 낙산초등학교의 샛터(뱃터)나루 쪽을 향해 개인용 소총을 머리에 이고 건너와 금무산을 공격하면서 미군의 기갑부사단장과 참모가 전사하고 많은 미군들은 죽음의 고비에서 전투기의 지원을 받아 268고지를 탈환하면서 인민군 대좌(대령)와 적군 1,000여명을 사살하였다.

     

    신동 대구를 향하는 국도와 철도를 감지하는 중요한 268고지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미군 또한 전투병력 손실이 막대하여 최전방 전투단위인 분대원 9중 보충병으로 한국군 2명을 보충병으로 긴급 투입하여 최초의 한미 연합 작전분대가 되었으며, 그후 카츄사(KATUSA)라는 주한 미군의 독특한 편제로 다시 태어났다.

     

    한편 인민군 주력부대가 경부선 국도를 따라 물밀 듯이 내려오다가 유엔군이 왜관의 낙동강 다리를 폭파하면서 남침을 저지당하였다. 다급한 적들은 게릴라 전법으로 강을 건너와 작오산을 지키던 미군병사 46명을 생포하여 신발과 옷을 빼앗고 밧줄로 묶어 참혹하게 살해하였다.

     

    시체더미에서 겨우 살아난 6명의 미군병사가 야만적 살인을 고발하면서 유엔군 사령관 멕아더장군이 대노하였고 조기에 B-29전략 중폭격기 100대가 삼총사 고지의 전방인 강건너 관호리 일대에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류작전을 위한 폭격이후 최대의 융단폭격을 가하여 주위의 산야가 한자이상 날아가고 웅덩이화 되면서 적의 기를 꺾어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세계 전투사의 길이 빛나는 낙동강 다부동 전투의 핵심인 삼총사 고지가 삼태성(三台星)수문장 역할을 다하였기에 인천 상륙작전이 가능하였으며, 민족의 비극인 6.25 동란을 승리로 이끈 기폭제가 되었다. 호국의 고장 삼형제봉 고지가 피바다의 아픈 애환의 역사를 간직한 채 이제는 평화로운 비로봉 같은 자비의 하르방이 되어 우리 곁을 같이 하고 있다.

     

    매원 곡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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