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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입춘회의 400년 아름다운 전통

기사입력 2014.05.0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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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봉정사(鹿峰精舍)를 거점으로 칠곡, 성주, 선산과 함께 낙동강 중류 지방의 한려학맥(寒旅學脈)은 정구(寒岡)와 장현광(旅軒)을 중심으로 예학의 정통과 함께 새로운 실학인 사전(史傳), 호전(戶田), 인물, 성씨, 풍속 등 성주, 칠곡지방의 모든 문물과 함께 문화적 가치를 가진 경산지(京山誌)를 한강은 수제자 이윤우(石潭)에게 집필의 유언을 남기면서 그 후 석담의 아들 이도장(洛村)과 손자 이원정(歸巖,문익공)으로 3대에 걸쳐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하였다.

     

    경산지(京山誌)에서 추구한 주요 내용은 고을 백성들의 역사, 지리, 풍속 등 문화적 삶의 가치를 창출하고 돈독히 하면서 특히 이웃과 함께 일가 친족들은 백대지친(百代之親)으로 친목과 화목의 기본적 인간관계를 이 책을 통하여 강조하였다.

     

    광이 출신으로 한림 벼슬의 낙촌(洛村,1603년 출생)은 이웃과 일가친척간의 친목도모를 함께하고자 동계(洞契)를 결성하면서 아들 귀암은 귀암문집(歸巖文集)을 통해 상지동 계안서(上支洞 契安序)로 향약을 구체화했으며 손자인 이담명(靜齋)은 그의 문집에 향약통문(鄕約通文)의 규약을 만들면서 실직적인 실학의 학풍으로 발전하였다.

     

    이윤우(石潭) 후손들은 매년 음력 3월이 오면 입춘회(立春會) 모임을 가지며 친목과 화합의 장소로 400여년이나 계속하여 유지 발전되어왔으며 중흥조인 이집(遁村公)의 유훈인 일가는 백대지친(百代之親)하라는 아름다운 전통사상을 받들며 더욱 큰 화목과 만남의 장이 되었다.

     

    처(處)의 안정보다 돌밭 나루터를 중심으로 출(出)의 경세론인 실학을 강조한 광이 문중의 독특한 학맥은 주자학의 명분론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4대 한림의 풍부한 선비의 명문장가(名文章家) 집안이지만 문집 정도만 남아있다.

     

    4대 한림이후에도 매원이 곧 장원방이라는 명성과 함께 명문가에 태어난 이만운(默軒)은 당대에 영남 유림에서 유종(儒宗)의 추대와 함께 불천위(不遷位)로 다시 한 번 추앙 받았지만 천문, 지리, 역학과 인문학 등 실사구시 정신으로 학문에만 몰두하면서 당쟁으로 희생된 선조들의 유언에 따라 벼슬에 연연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 정약용(1762년 출생)의 목민심서와 함께 수원 화성축조의 이론서 등 조선 실학의 태두라고 하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지만 조선중기의 정한강(1543년 출생)과 이윤우(石潭)를 통한 창산지와 경산지 창간으로 실질적 학문과 함께 18세기 이만운(默軒)으로 이어지는 천문, 지리, 역학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학문의 큰 성과는 조선 실학의 기원을 200년 이상 앞당겨 재조명 해보아야 하겠다.

     

    2014년 5월 3일 매원 곡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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