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독자기고] 공자의 사람 죽임

기사입력 2013.09.16 18:33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고대 중국은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 이전에도 더욱 암울했던 춘추전국시대가 있었다. 피와 죽음의 전쟁으로 먹고 먹히면서 패륜이 판을 치던 난세에 태어난 공자는 치국 태평천하의 이상적 세상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라와 인간의 관계에서 어짊의 인(仁)과 예(禮)를 으뜸으로 삼아 전설의 요순(堯舜)시대를 흠모하면서 태평성대의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전국(戰國)시대의 군주와 제후들은 공자의 이상적인 정치철학에 냉소와 함께 문전박대까지 하였으며 때로는 상가 집 개처럼 홀대도 하였다. 그러나 포부와 뜻을 굽히지 앉고 전국을 주유천하 하면서 고행스러운 삶을 살았다.

     

    이렇게 오랜 고난의 여정에 지천명의 나이인 50이 넘어 고향땅 노나라에서 정승의 벼슬인 지금과 비교해보면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을 겸직한 대사구(大司寇)라는 높은 관직에 오른다.

     

    판관으로서의 공자는 다스림을 받는 가난한 백성들의 잘못은 먼저 관용의 원칙을 생각 했으며 반대로 고위 공직자는 만백성의 모범이요 사회적 사표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 죄에는 매우 엄격하게 다루었다.

     

    어느 날 공자는 나라에 정치와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다는 이유로 노나라 대부요 명사인 소정묘(少 正卯)를 사형에 처하고 그 시체를 사두 거리에 걸어놓았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인과 예를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신 스승께서 나라에 명망 있고 높은 사람을 잔인하게 처형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사구로서의 공자가 자공에게 말하길 아는 것이 모자라면서 마음이 음흉하고 행동이 편협하면서도 반역적인 위선과 거짓으로 사회를 혼란시키고 그릇된 부정으로 부를 누리며 잘 살아가는 자는 마땅히 죽여서 사회의 기강을 바로 새우는 잣대로 삼고 정치에서 만인을 위한 뚜렷한 경고의 이정표를 새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동란의 처참함은 수백만 사상자의 원혼과 애환의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배고픈 가슴 알이 멍에를 짊어지고 기나긴 보릿고개라는 한 많은 아픈 추억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에 우리는 북한에 비하여 너무 많은 자유와 풍요로움을 누림은 때로는 상대적으로 회한과 연민의 동포애를 아니 느낄 수 없다.

     

    북한은 3대 왕조 세습체제로 사전에도 없는 세계 유일의 공산주의 주체사상이라는 가두리를 만들어 자유와 인권의 탄압은 물론, 인간의 기본권인 의·식·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참담한 어버이 수령의 나라 동토 왕국이 아닌가?

     

    나라의 가난은 임금도 구제하지 못한다 했는데 수령의 왕인들 어떻게 할까?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다.

     

    공자와 같은 위대한 성인이 태어 난지 250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오늘의 정치형태는 오십보 백보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소정묘와 같은 교활한 위선자들이 온통 나라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다.

     

    인권의 자유와 평화는 인류의 보편적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피와 땀의 투쟁으로 쟁취해 왔음이 엄연한 과거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어렵게 지켜온 민주평화체제에 의한 누림에서 초조한 좌경 정치 사상가들의 선동과 모략은 국론의 분열과 함께 국력을 낭비시키고 냉전의 위기를 선동하면서 시대착오적인 그들의 세상을 만들려 하고 있다. 우리의 염원인 민족통일을 위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같이 사회의 정의로운 참여정신으로 그들의 만행을 경계 해야겠다.

     

     

    2013년 9월 왜관 곡촌.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