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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동 기념비를 세우면서[독자기고] 이수헌 왜관농협 조합장

기사입력 2013.07.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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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관농협이 2013년 7월 칠곡군 봉계리 

       세븐밸리 골프장에 세운 장자동 기념비

    왜관읍 봉계리의 윗마을인 장자동은 구한말 박해와 탄압을 피하여 깊은 산골에 위치한 천주교 신자촌 이었으며, 초기신앙의 공동체적 상징인 옹기굴과 함께 옹기종기 쌓아올린 돌담의 뚜렷한 흔적들은 유년시절 산길 따라 고이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추억의 산촌마을이었다.

     

    2007년 골프장(세븐벨리) 개발당시 문화유적 발굴 조사에서 토관묘와 함께 대형 청동 십자가와 생활용품에 필요한 토기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화제적 가치에 대한 발견현황을 기록하여 현장에 팻말로만 남기고 박해와 수난을 당하면서 굳게 지켜온 정취어린 신자촌은 아쉽게도 개발이라는 흙더미 속에 묻혀 버렸다.

     

    평소 향토 천주교회사에 관심이 많았던 까닭인지 귀한 인연으로 구한말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왔던 미텔 주교 일지를 우연한 기회에 읽어볼 수 있었다.

     

    초대 천주교 조선 교구장을 역임한 미탤 주교께서 이곳 오지 산골마을까지 교회 활동을 위하여 방문할 당시 29가구에 109명의 신자가 생활하고 있었으며, 신앙촌과 함께 그들의 소박한 삶을 주교일지에 기록으로 남겼다.

     

    미탤 주교의 역사적 기록을 골프장 개발 전에 미리 알았다면 신앙촌 원형은 그대로 보존하고 골프장도 살리는 일석이조의 역사의 현장이 되었을 터인데 아쉬움이 절로 남는다.

     

    어릴적 아름다운 추억으로 각인된 돌담길과 옹기종기 모여 있던 정겨운 집터들, 주교일지의 신앙촌 마을을 연상하며 지난날을 유추해보면 이곳 장자동은 신자촌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다.

     

    추기경의 아버지 김요셉(김영석)은 충청도 연산에서 부친이 순교를 당하여 유복자로 태어나 유년시절 가난한 환경에서 박해와 유랑의 세월 따라 이곳 장자동 신자촌에 정착하여 옹기굴 책임 도공을 했으며 대구의 전통 카톨릭 집안의 서 마르티나(서중하)와 결혼하였다.

     

    추기경의 누님은 남편과 일찍이 사별하고 친정 가족들과 함께 다시 군위에서 모여 살아야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김 추기경께서도 어린 시절 군위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누님 집에서 잠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생전에 옹기굴과 함께 신앙촌에서 좋은 인연의 흔적을 찾고자 영남 카톨릭 연구소와 왜관성당 신부와 교우들을 통하여 탐문했으나 깊은 산속 오랜 세월 속에 묻혀 있었기에 아쉽게 찾지를 못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영남 카톨릭 연구소장을 역임한 마백락 회장께서는 김수환 추기경님이 병상에서 신자촌 발견소식을 전해 듣고 좋은 일을 한다는 격려와 함께 장자동 신자촌을 꼭 한번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지만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아쉽게 영면하셨다 한다.

     

    이곳 장자동 신자촌은 칠곡의 신나무골 성지 뿐 만 아니라, 영남교회의 발상지인 한티성지와 함께 유서 깊은 가실 성당을 중심으로 대대로 살아온 향토의 토착 천주교인들 사이에서는 김 추기경과 함께 그 가족들도 박해로 인한 유랑의 삶이였기에 장자동 신자촌에서도 생활을 했다고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한 장자동은 조선 말엽 한성판윤(서울 특별시장)을 9번이나 역임하고 대한제국 고종황제 시절 서울에 문화의 상징인 전기 불을 경복궁 향원정에서 처음 밝혔으며, 서울 인천간 우리나라 최초로 물류를 대표하는 경인선 철도부설을 책임 감독한 이채연 공이 탄생한 선구자의 고향 마을이기도하며, 그의 어머님께서도 신자였다고 전해온다.

     

    용맹의 호국과 함께 절의를 상징하는 순교의 고장으로 영남삼촌의 오랜 선비정신을 지킨 유구한 전통의 명당이기에 보석 같이 풍성한 주저리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자랑스럽게 탐구하고 찾아도 보면서 한소쿠리 두소쿠리 캐어도 보고 소담스럽게 담아도 보고 싶다.

     

    여러 고증과 종합된 이야기들을 다듬고 집약하여 어렵게 옛 장자동 신자촌에 십자가를 곁들인 정성 어린 기념비를 세웠다. 오늘을 살면서 우리들 모두의 미래에 비목 같은 작은 이정표라도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2013년 7월 왜관농협 조합장 이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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