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춤 구상 옛 등걸 매화가 흰 고깔을 쓰고 학鶴춤을 추고 있다 밋밋한 소나무도 양팔에 푸른 파라솔을 들고 월츠를 춘다 수양버들 가지는 자진가락 앙상한 아카시아도 빈 어깨를 절쑥대고 대숲은 팔굽과 다리를 서로 스치며 스텝을 밟는다 길 언저리 소복한 양지마다 잡초 어린것들도 벌써 나와 하늘거리고 땅 밑 창구멍으로 내다만 보던 씨랑 뿌리랑 벌레랑 개구리도 봄의 단장을 하느라고 무대 뒤 분장실 같다 바람 속의 봄도 이제는 멘살...
인생2 홍윤숙 산다는 것 연필로 그리는 그림이면 좋겠다 쓱쓱 지우고 다시 그리고 열 번 스무 번 지우고 그리고 다시 지우고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틀린 길 버리고 새 길 가보고 모든 길 한번 씩 다 가보고 가다가 막히면 되돌아오고 망치면 북북 찢어도 되는 새로 새 종이무한으로 쌓여 있는 산다는 것 버린 만큼 끝없이 채워지는 무한정한 종이 위에 지우개옆에 놓고 연필로 그리는 그림이면 좋겠다. *기미년삼월일일 정오 아우내 장터에서 유관순 ...
의 자 - 이정록 -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태는 좋은 의자 아녔나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갈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
새해 구상 새해 새 아침이 따로 있다드냐? 신비의 샘인 나날을 너 스스로 더럽혀서 연탄 및 폐수를 만들 뿐이지 어디 헌 날, 낡은 시간이 있다드냐? 네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 아침을 새 아침으로 맞을 수가 없고 결코 새 날을 새날로 맞을 수가 없고 너의 마음안의 천진 天眞을 꽃피워야 비로소 새해를 새해로 살 수가 있다. * 갑오년 새해 아침 입니다. 올 한 해 깨어 있는 삶으로 흰 날 천진(天眞)을 꽃피워 새해를 맞이하...
시와 기어(綺語) 구상 시여! 이제 나에게서 너는 떠나다오 나는 너무나 오래 너에게 붙잡혔었다. 너로 인해 나는 오히려 불순해지고 너로 인해 나는 오히려 허황해지고 거짓 정열과 허식에 빠져 있는 나 너는 이제 나에게서 떠나다오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나기 이전 그 천진 속에 있게 해다오 그 어떤 생각도 느낌도 신명도 나도 남도 속이지 않고 더럽히지 않는 그런 지어먹지 않는 상태 속에 있게 해다오 나의 입술에 담은 물이 진심에서 우러나오게 되며 나의...
훈춘의 길 중국 길림성 훈춘시 광신진 곤하 보은촌에 무지개가 떴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 중략 -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러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사격 연습 했던 보은촌 초가삼간 백년의 흔적이 허물어지고 있다 때 아닌 방문객들, 공안군 얼룩무늬 지프차가 달려오고 맑은 하늘에 소낙비가 지나가고 난 뒤 붉은 해는 존재하지 않는 낮선 풍경을 힐금...
은총에 눈을 뜨니 구상 이제사 비로소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을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나고 죽는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라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기는 매한가지지만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 안에 ...
광야曠野 李陸史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이 광음光陰을 부지런히 계절季節이 피여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 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8월 15일은 제6...
* 7월 입니다. 호국의 달을 보내며 어제 KBS1 생방송 이산가족 찾기 30주년 기념행사를 보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생전에 "꼭 만나도록"두손을 모아 기도 합니다.무더위에 건강 하세요. 여환숙 (시인, 세계문인협회칠곡지부장) 전 칠곡군청(구상문학관) 근무 2008년 4월월간 문학세계․시 세계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10년 제10회 동서커피(맥심)문학상 수상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이사
화랑담배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뜻도 모르고 신나게 고무줄놀이를 했다 지금도 훈련소에 입소하면 종교의식 하듯 두 손으로 피운다. 한 개피 만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 골초는 계급과 상관없고 휴가 가는 고참들 귀향 선물로 최고였다 하루에 세 갑도 모자라던 골초스님 연병장이나 막사주위 꽁초는 그의 손에서는 생불 한다. 합동보관소까지 만들어 사재 흡연자는 금연자에게 양보 받아 스님에게 시주했던 그 스님 지금도 굴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