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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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호계삼소(虎溪三笑)의 웃음자리유교의 대가 도연명(陶淵明)과 불교의 고승 혜원(慧遠)스님 그리고 도교(仙)의 법사 육수정(陸修靜)은 종교 간의 상대적 이해를 위한 담론을 꽃 피우면서 유불선(儒彿仙)의 3종교가 마지막 귀결의 진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라고 결론하면서 시류와 함께 풍류도 즐기면서 담소의 자리를 자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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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한강(寒岡)공원 대구의 자랑세종대왕 다음 현군으로 칭송받은 정조대왕 당시 학자와 정치가로 명망이 높았던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은 실학자 이익(성호(星湖))의 비문을 쓰면서 퇴계는 동방 성리학의 최고이며, 그 학문을 정구(한강)에게 전수하였고, 한강(寒岡)은 과거에 급제 못한 유림으로 영의정에 오른 허목(미수(眉叟))을 제자로 삼았다. 미수(眉叟)를 스승으로 한 성호(星湖)는 영남 퇴계학맥을 기호(충청, 경기)지방까지 전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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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팔공산의 역사적 의미신라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북두의 태백산을 시작으로, 동서남북에, 위치한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과 함께 공산(公山)은 반도의 중심인 중악(中岳)으로 오악산(五岳山)중에 으뜸이었다. 또한 공산은 주인 없는 산이면서 만인이 다 같이 공유한다는 유불선(儒彿仙)을 같이한 무주공산(無主空山)의 동일적 개념이며 조선 개국과 함께 산 주위에 8개현이 형성되면서 팔공산으로 이름 하였다는 설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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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조선의 낙동강 운수사경산지(京山誌)기록에는 낙동강 좌, 우, 강변, 편리한 장소를 거점으로 왜인(倭人)들은 강물 따라 한양을 오르내리면서 조정에서는 일정한 거리의 위치마다 물품조달과 함께 숙식의 장소를 배려해 주었다.(洛東江 左右道 矮人申水路 朝京時 每日息程 設站以時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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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낙동강(다부동)전투와 삼총사6.25 전투사에 빛나는 백마고지 전투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치열한 전투로 유명한 328(숫대미산)고지는 한국 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버팀목으로 지켰으며, 미군이 주둔한 303작오산 고지와 인근268금무산과 함께 삼총사고지는 천년 요새인 낙동강을 방어벽으로 마지막 대구 부산을 사수한다는 유명한 워크라인의 마지노선인 최후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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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덕치(德治)와 법치(法治)논어의 자로편에 초나라 섭공(葉公)은 공자에게 정치의 자문을 얻고자, 먼저 자기의 과시적 이야기인즉, 우리나라에는 정직하게 살아가는 직궁(直躬)이라는 사람은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쳤다고 하면서 아들이 관가에 가서 아버지의 행위를 증언했다고 한다. 섭공은 나라의 기강을 강조하면서 법치(法治)의 초나라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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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연민인도의 유마거사는 석가모니 부처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 결혼을 한 재가불자(在家佛子)이다. 깨달음이 부처의 경지에 올랐기에 유마거사의 언행록은 부처가 설법한 불경과 같이 유마경으로 존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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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입춘회의 400년 아름다운 전통녹봉정사(鹿峰精舍)를 거점으로 칠곡, 성주, 선산과 함께 낙동강 중류 지방의 한려학맥(寒旅學脈)은 정구(寒岡)와 장현광(旅軒)을 중심으로 예학의 정통과 함께 새로운 실학인 사전(史傳), 호전(戶田), 인물, 성씨, 풍속 등 성주, 칠곡지방의 모든 문물과 함께 문화적 가치를 가진 경산지(京山誌)를 한강은 수제자 이윤우(石潭)에게 집필의 유언을 남기면서 그 후 석담의 아들 이도장(洛村)과 손자 이원정(歸巖,문익공)으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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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이담명(정재공)의 영세불망비나라의 기둥뿌리를 위협한 당파싸움은 임진왜관을 몰고 온 치욕적 국난을 당했으면서도 또 다시 명분을 앞세운 예송 논쟁 등으로 당쟁이 더욱 치열한 조선 중기에 담명(聃命)은 1646년. 탄생하여 생원시 과거에 수석으로, 대과에는 아헌으로 등용된 탁월한 정치행정가이며 학자로서 파란만장한 한세상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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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삼학산(三鶴山)과 오학동(五鶴洞)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사상적 중심의 축으로 기(氣)와 맥(脈)을 중시하였기에 일찍이 산세(山勢)·지세(地勢)·수세(水勢) 등을 판단하여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시키는 풍수지리가 체계화된 학문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