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royalblue face=굴림>[기고]가산산성(架山山城)과 빙고(氷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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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가산산성(架山山城)과 빙고(氷庫)

낙동강 중류학맥(한려학맥)으로 실학의 태두 정 한강은 성주 무휼구곡을 떠나 칠곡의 노곡방(가실성당 주변)에서 경산지(京山誌)를 집필하다 애석하게 화재를 만나 세월과 나이를 탄식하고 금호강 주변 사수동으로 침거하면서 마지막으로 수제자 이윤우(석담)에게 아들 이도장(낙촌)과 손자 이원정(문익공)이 학문으로 장래가 촉망되니 실학(實學)의 명저인 경산지 집필을 간곡히 부탁했다.

 

3대에 걸쳐 경산지를 완성한 이원정은 향토실학인 가산산성 중수기(架山山城 重修記)를 다시 편찬한 내용에는 산성 내 칠곡도호부 관아 부속건물과 경상감영 호적고(戶籍庫)와 문서보관 장적고(章籍庫)등 100여 칸 웅장한 모습의 건물들 이 있었다. 산성 내 구름이 자주 머물며 습기가 많아 목재로는 소나무가 좋으나 잘 썩기 때문에 단단한 참나무로 건물을 지었다는 기록과 함께 군량미 또 한 자주 변질되어 증기로 찐 찐쌀을 세곡으로 납부 받았다는 것이다.

 

조선 기록문서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칠곡부(府)편에는 군관(軍官)182인 성정군(城丁軍)1800명 아병(牙兵)2000명 모민작대(募民作隊)1000명 승군(僧軍)포함기타600여명 관노(官奴)관비(官婢)50여명을 거느린 종삼품 벼슬로 차관 급이지만 조선의 왕도정치에는 3권을 휘두르는 막강한 자리였다.

 

칠곡 부 읍지에, “빙고 재동부북이십리 가산성내중”(氷庫 在東府北二十里 架山城內中)으로 가산산성 관아북쪽 이십 리에 얼음 빙고가 있었으며 경상감영 전용과 칠곡 부사가 사용하는 얼음 창고 2곳이 있었다는 문헌이 있다. 서릿발 같은 군기와 함께 “일일용병 십년양병” 여름 무더운 산중 병영생활에도 선조들의 시원한 얼음음식 문화를 만끽한 지혜로움에 참으로 놀라움이 앞선다.

 

내성의 등고선 따라 문화재유적 탐사반에 의해 발견된 빙고로 예측되는 곳에 흙 돋음 재방흔적과 함께 석축인 듯 흙더미에 묻혀 복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 안타까운 모습이며 바로 옆 저수지에는 인공 섬 까지 만들었으며 산성 내 여러 곳의 못 중 제일 큰 저수지라고하며, 겨울 동장군이 찾아와 두껍게 얼음이 얼면 빙판을 잘라서 소달구지로 옮겨 빙고에 보관했으리라 유추해본다.

 

겨울이 재촉해오면 가족아이들과 함께 역사문화탐방 기행과 함께 산중 얼음 스케이트도 즐기면서 인공 섬에 옛 팔각정 기왓장이 숨어있는지 찾아도 보고 춘절(春節)에 행운을 상징하는 복수(福壽)꽃 봄 마중도하면서 아울러 성내 비상 헬기장 주변에 자생한다는 국가지정 특정식물 귀한 초롱이 꽃 군락지도 찾아보아야겠다.

 

 

2015년 10월 21일 매원 곡촌 이 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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