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royalblue face=굴림>나자레나 수녀의 한국을 위한 평생기도<font color=gray size=3>[기고] 이수헌 전 왜관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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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자레나 수녀의 한국을 위한 평생기도[기고] 이수헌 전 왜관농협 조합장

1940년대 후반 미국 사교계의 유명한 오패라 가수로 활동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속세를 떠나 수녀로 다시 태어난 나자레나는 여러 수도원을 전전하다 더욱 깊은 기도정진을 위해 교황청 인근 유서 깊은 안토니오 수녀원을 찾는다.

 

참혹한 흥남부두 철수의 영웅 루나 선장이 전쟁의 슬픈 현실에 비애를 느끼고 수도자로 평생을 살아온 마리너스 수사처럼 나자레나 수녀 또한 동족상쟁의 6,25전쟁에 금수강산이 피바다로 변한 비참한 현실에 특히 한국 평화와 그리스도교 개혁의 2가지 서원으로 44년간 감옥 같은 골방에서 헌신과 기도로 몸 바쳤다.

 

2평작은 방에서 송곳 같은 자기학대의 채찍과 가시복대를 몸에 두르고 잠을 자지 않고 기도정진, 쇄잔 한 나자레나 수녀는 죽음이 가까운 어느 날 영적 지도 신부에게 보수적 교황청과 카톨릭을 개혁하고 인류의 전쟁 없는 평화를 위하여 더욱 참된 영적 기도를 하고자 교황청 내 작은 독방을 원했다.

 

지도신부는 깜짝 놀라 나자레나 수녀님을 달래면서, 전통적 안토니오 수녀원에서 40여 년간 기도정진 유서 깊은 이자리가 권위적 교황청보다 살아있는 기도처임을 강조하면서 6개월간 나자레나 수녀와 대화한 서찰의 내용이 그 당시 교황청 내 독일출신 라징거 추기경이며 지도신부와 절친하고 서찰에 많은 관심을 가진 분이 훗날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되며 나자레나 수녀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베네딕도16세는 보수적 집정관인 많은 추기경들의 개혁적 노력이 뜻대로 아니 되어 영광된 평생 교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남미 해방신학 진원지인 개혁적 프란치스코에게 교황 자리를 물려주고 나자레나 수녀가 간절히 기도하고파 했던 교황청 작은 다락방에서 세계평화와 종교개혁을 위하여 두문불출 인류를 위한 기도정진은 감동적 참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지구촌 많은 나라들이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인 교황방문을 환영하고 있지만 특히 조선은 박해와 시련을 통하여 순교자를 많이 배출한 영광과 선택된 나라이기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아세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을 단독 방문하면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한 가족4대가 순교한 세계적 솔 뫼 성지를 방문하였다.

 

전 베네딕도 16세 교황 또 한 한티성지와 신나뭇골 성지가 두 곳이나 모시는 작은 도시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을 귀한 매씨아적 염원으로 방문하였을 것이다. 보수와 개혁적 두 교황께서 가나안과 같은 코리아의 섭리적 만남으로 이어짐은 세계 유일 분단국 한국을 통한 세계평화와 그리스도교의 개혁을 위해 평생을 기도 정진한 나자레나 수녀님의 깊은 인과에 대한 응보라 하겠다.

 

이수헌(곡촌) 전 왜관농협 조합장(향토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