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royalblue face=굴림>객구(客鬼)는 물리고 주당은 풀어야 한다<font color=gray>[독자기고] 이수헌 왜관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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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객구(客鬼)는 물리고 주당은 풀어야 한다[독자기고] 이수헌 왜관농협 조합장

국민소득이 100달러 시대의 1960년대 이전에는 보릿고개의 어려웠던 반만년 한(恨)의 긴 세월이었다면, 해방이후 가까운 근세사에서 60여년 만에 소득수준이 2만 달러 시대의 번영은 경이적인 한강의 기적이라고 세계인들이 감탄했다.

 

어려웠던 그 시절 우리들 음식문화의 풍경은 가난의 멍에로 전기불은 물론이고 냉장고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모처럼 음식을 많이 하는 생일잔치와 제사음식은 하루에 다 먹지 못하니 쉬거나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다.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인 그 시절이라, 아까워 버리지 못한 상한 음식을 찬물에 씻고 헹구어 먹다가 설사와 배탈을 자주 하게 되니 이를 일러 객귀(鬼)가 들었다고 했었다.

 

이와 함께 과거의 장례문화는 현대식 예식장이 없었던 열악한 환경의 초상집이기에 시신을 옆방에 두고서 음복을 해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장례 풍속 이였으므로 상가 집을 다녀온 후 꺼림 찍한 마음에 경직된 소화기 계통의 스트레스에 의한 음식물이 췌 하여 고통스러움을 당했으며 이를 주당이 들었다고 했다.

 

심하면 급 주당이라 하여 죽음까지 이르렀으며 병원과 약국이 흔치 않았던 그 시절에는 응급하게 객구는 칼로 물리고 주당은 무당을 청하여 풀어주어야 하는 독특한 치료방식은 우리들 곁에 면면히 이어온 민간 처방요법의 한 방법이었다.

 

몇 년 전 농협 답사 반 회원들과 함께 태국을 여행하면서 전쟁과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를 볼기회가 있었다. 그중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님 한분이 배탈이 났다고 하면서 어릉장 응석과 함께 투정을 해왔다.

 

가까운 곳에 의료시설이 없는 외국이라 당황스러움이 앞섰지만 임시처방으로 배가 아픈 할머니를 위하여 객구를 물리겠다고 하니 웃음보따리와 함께 어떻게 물릴 것인가 하는 기대를 하면서 모두가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고 있었다.

 

우선, 표주박 바가지 대신 음식그릇에 귀신을 쫓는 붉은 팥알은 없어도 먹다 남은 밥과 함께 간장과 김칫국물을 혼합하였다.

 

그리고 할머니 뱃속의 객귀(鬼)인 나쁜 혼(魂)을 머리 위 정수리로 뽑아 올리기 위해 정신이 번쩍 들어오도록 쭈삣한 포크로 이마를 치면서 칼을 대신해 포크를 입에 물린 다음 췌하고 경직된 속을 풀고자 시큼하고 차가운 갱시기 국물을 떠먹이고 허공에 포크를 던지니, 할머니 뱃속의 귀신은 포크의 칼날을 타고 함께 콰이강의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 보낸 가난했던 과거의 재미있었던 해학적 경험 놀이도 해보았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풍요로움이 지나쳐 낭비가 너무 심하여 뜻있는 우리들 모두의 마음을 안스럽게 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음식물 쓰레기통은 아까운 하얀 쌀밥이 넘쳐나서 매일처럼 파리와 고양이의 천국이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밥알들도 방앗간 도정공장을 거치지 않았으면 볍씨로서의 다 같은 신성한 생명체 들일 진데 쓰레기통에 버려진 저 허들어진 많은 쌀의 뭇 생명들은 우리들 누구 마음대로의 잘못인지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세상 만 사가 윤회의 인연이 인과에 의한 응보라면 인간관계에서 좋은 적선을 추구함은 당연 하려니와 자연의 만물인 모든 생명체와도 악업을 짓지 않도록 끝임 없이 노력하고 정진해야 할 것이다.

[이수헌 왜관농협 조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