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royalblue face=굴림>[한 편의 詩] 옛날 그 집<font color=gray size=3>세계문인협회칠곡지부장 여환숙 시인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편의 詩] 옛날 그 집세계문인협회칠곡지부장 여환숙 시인

 

옛날 그 집

                                              박경리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11월 첫 날, 불쑥 박경리 선생님의 가을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자연은 과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내 영혼을 실하게 채워주었고’ ‘내 뜰은 생명으로 충만하다’고 하시며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하셨네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 벌써부터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묵은 것은 깨끗이 버려 새 마음으로 새 봄을 맞이해야 겠습니다. 건강하세요.

 

 

 

2015010223164.jpg여환숙(시인, 세계문인협회칠곡지부장) 

-전 칠곡군청(구상문학관) 근무

-2008년 4월<월간 문학세계․시 세계>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10년 제10회 동서커피(맥심)문학상 수상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칠곡문화원 이사

-향토경북 칠곡군이사